바르셀로나 여행기 - 여섯째날 바르셀로나 대성당
바르셀로나 대성당 (Barcelona Cathedral)
여러 성당 중 Cathedral이라고 이름 붙은 성당이 있다. Cathedral은 성당의 행정 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교구의 중심이 되는 성당으로 주로 교구의 수장인 주교 신부님이 계시는 성당이라고 보면 된다. 주교님이 앉으시는 좌석을 cathedra, 주교좌라고 하는데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가우디의 Sagrada Familia는 일반 성당 건축물이지 주교 신부님이 계시는 공간이 아니라 Cathedral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보통 그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당이 주교좌가 되기 때문에 Cathedral이라고 하면 규모에 따라 정해지는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상은 그런 규모의 방식으로 성당의 급을 나누는 것은 아닌 셈이다. 따라서 바르셀로나 대성당, Barcelona Cathedral은 주교님이 계시는 가톨릭 교구의 중심 역할을 하는 장소인 셈이다.
정확한 역사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가톨릭이 공인되고 나서는 이 자리에 로마시대 성당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되어 진다. 그리고 그 때 이미 성녀 에우랄리아의 유해가 모셔져 있었다고 여겨진다. 10세기 경에 바르셀로나는 무어인(Moors; 현재 모로코를 비롯한 북서아프리카에 살던 무슬림들을 부르는 말이지만 대체로 중세 유럽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해 거주하던 무슬림들을 칭하는 경우가 많다)에 의해서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는데 11세기에 그들을 물리친 후 바르셀로나의 백작이었던 Ramon Berenguer가 기존에 있던 성당을 보수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058년에 완성한 것이 첫 대성당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1298년 거의 재건에 가까운 수리가 시작되어 150여년에 걸쳐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성당 건물을 허물고 처음부터 다시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매꾸고 추가해 가면서 짓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서 그 긴 시간동안에서 대성당은 성당의 용도로 매주 미사도 열렸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예술가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명망이 있었던 여러 예술가들이 건축/재건에 참여하여 제대 뒤 그림, chapel 내에 있는 그림들과 조각들을 만들어 내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한다. 피렌체의 Duomo도 그랬지만 성당 건물 자체는 다 지었지만 대성당 정면을 장식하는 facade는 건물이 완성되었던 1448년에도 비어 있는 모습이었다고 하며 바르셀로나 대성당을 설명하는 아래 링크에 가 보면 19세기 facade를 만들어 넣기 전 횡한 모습의 대성당 사진을 볼 수 있다. 1888년 기업가 Manuel Girona Agrafel이 비용을 부담, 건축가 Josep Oriol Mestres가 설계를 해서 완성시킴으로써 1913년에야 비로소 지금의 facade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https://www.barcelona.de/en/barcelona-cathedral-la-seu.html
Sagrada Familia 때문에 이 바르셀로나 대성당이 가려지는 부분이 있지만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 Gothic quarter 입구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에 오는 관광객이라면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게다가 상당히 넓은 광장을 앞에 두고 있어 늘 그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라 누구나 한번쯤 저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다.
첫날 도착해서 간단히 저녁을 먹으러 이 대성당 앞 광장을 찾았을 때도 간단히 안을 구경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입구에서 서서 들어가는 사람들을 확인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미사 중이라고 일반 관람객은 받지 않았고 미사 참석 하려는 사람들만 들여 보냈다. 그 때는 나중에 시간 되면 다시 와야지라는 생각만 했더랬다. 대부분의 성당은 미사 중이 아니라면 성당 안을 관람하는 것은 무료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들어가려고 확인해 보니 입장권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날 밤 여유롭게 방문하기 위해 오후 3시 30분 입장권을 미리 예매해 두었다. Monjuic 성까지 다녀 오고 점심 식사까지 마치고 나면 빠듯할 줄 알았는데 시간은 딱 맞출 수 있었다.
입장권을 들고 대성당 정문으로 가니 입구가 두개가 있었다. 우측에 있는 문은 무료 입장할 수 있는 문으로 그 쪽으로 들어 가면 성당 입구에서 우측에 위치한 작은 chapel만 방문할 수 있고 더 안으로는 들어 갈 수 없다. 반면에 좌측에 있는 문은 입장권을 가진 사람만 들어 갈 수 있는데 내부 전체를 돌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당 지붕(rooftop)까지 올라갈 수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가까운 부분부터 하나씩 살펴 보는 동안 둘째가 입구에 있던 QR code로부터 visual info 페이지를 열어 가족들에게 공유를 해 주었다.
여타 다른 성당과 마찬가지로 입구부터 좌우로 작은 chapel들이 가득 차 있고 제대 뒷편으로도 작은 chapel들이 위치해 있었다. 각 chapel 안에는 서로 다른 성인들의 조각상들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 가서 볼 수는 없었고 chapel 입구는 모두 철제 세로막 문으로 막혀 있었다. 철제 세로막 사이로만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데다가 안쪽에 따로 조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성인 조각들과 장식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자세한 모양들은 살펴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앞에 특별한 설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군데 군데 이 성인 조각은 누구이다 정도만 적혀 있는 것이 다여서 그다지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지 않았다. 아무리 가톨릭 신자라도 수많은 성인들을 전부 알 수는 없데다가 익숙하지 않는 이름들만 보여서 처음 몇몇 chapel만 살펴 보고는 금방 흥미를 잃어 버렸다.
그 때 열심히 visual info를 읽어 보던 둘째가 한 페이지를 보여 준다. 당시 상인/장인 조합인 Guild가 자신들의 수호 성인들을 각 chapel에 모시고 장식을 꾸몄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 부분을 읽고 나서야 이제 조금은 서로 다른 chapel들의 모습과 낯선 성인들의 모습이 이해가 갔다. 어디서든지 이야기가 없다면 보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반적으로 성당 안을 들어가 보면 뒤에서부터 제대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이 앉는 긴 의자들이 좌우로 놓여 있고 성당 입구에서부터 저 앞 제대까지 훤하게 트여 있는 것이 보통인데 바르셀로나 대성당에는 특이하게 중간에 구조물이 하나 서 있다. 외관만 보아서는 무슨 작은 집처럼 생긴 구조물인데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보니 전체적인 시야를 막아 서고 있다. 그래서 입구에 들어서면 저 앞에 보여야할 제대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이 특이한 구조물은 무엇일까.
Visual info와 입구에서 집어든 map에 따르면 이 구조물 이름은 Choir라고 한단다. Choir라고 하면 "성가대"라고 직역하게 되는데 이렇게 성당 중간에 성가대가 위치한다는 건 너무나 이상한 모습이었다. 뒷편으로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하나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반대편은 뻥 뚫려서 제대까지 트여 있고 지붕이 있는 구조는 아니고 주변 벽면을 따라 잘 장식된 의자가 쭉 도열해 있는 모습이다. 말로만 기술하자면 어떤 모양인지 잘 상상이 안 될 수도 있는데 아래 사진을 보면 어떤 모습인지 이해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 앞에 서서 정교하게 장식된 의자들을 보며 어떻게든 Choir라는 단어에 맞추어서 이해를 해 보려 했으나 성가대 그 이상의 뜻을 알지 못해서 뭔가 이상한데라며 고개를 꺄우뚱 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지만 돌아와 여행기를 작성하기 위해서 이것처럼 더 검색을 해 보다가 이 Choir라는 단어가 다른 뜻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건축학상으로 Choir라는 단어는 성당 혹은 Cathedral 내에 수도자/성직자/귀족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들을 의미하며 실제 성가대의 역할도 했으므로 미사가 진행되는 제대를 바라 보는 것이 아닌 직각형태로 배치가 되었다고 한다. 중세 고딕 양식의 성당에서 주로 보이며 검색해 보면 아직 이런 형태로 남아 있는 성당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아래 위키피디아 페이지에 가 보면 유럽 다른 성당 안의 Choir 사진들을 볼 수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Choir_(architecture)
Basilica Catedral Metropolitana de la Santa Creu i Santa Eulalia
뭔가 복잡한 것 같은 이 기다란 이름이 카탈루냐 어로 적은 바르셀로나 대성당의 정식 이름이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Metropolitan Cathedral Basilica of the Holy Cross and Saint Eulalia이다. 대성당 이름에 성녀 에우랄라아가 들어갈 정도로 이 대성당은 이 성녀에게 진심이다. 와이프가 이 성녀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내지 않았더라면 이 성당 곳곳에 묻어나 있는 여러가지 의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갔지 않았을까 싶다. 우선 그녀에 대한 흔적은 중앙에 위치한 Choir에서 찾을 수 있다. 안쪽을 살펴 보고 나서 바깥쪽 장식들을 둘러 보던 중에 대성당 입구쪽을 면한 부분에서 그녀가 X 형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조각을 찾아 낼 수 있었다. 그 특유의 X 십자가라서 다른 그림/조각들과는 구별되는 그녀만을 나타내는 특징이다.
대성당의 이름에 성녀 에우랄리아가 들어가는 만큼 실제 그녀의 무덤이 이 대성당 안에 마련되어 있다. 물론 주변 chapel에 다른 성인들과 주교의 무덤이 있기는 하지만 성녀 에우랄리아의 무덤만큼은 대성당의 상징이라고 할만큼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Choir는 ㄷ 자 모양으로 열려 있는 부분이 대성당 앞쪽 제대를 향하고 있는데 그 Choir 안에서 제대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뜻하지 않게 지하로 이어지는 경사로가 펼쳐져 있다. 어디 지하 구조물로 내려가는 좁은 경사로가 아닌 전체 대성당의 가로 폭 반 이상을 차지 하고 있어 얼핏 보면 제대가 주 무대가 아닌 이 지하 경사로가 주 무대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 경사로 끝에는 아담한 구조의 방이 위치하고 있는데 워낙 넓게 펼쳐져 있어 내부까지 훤하게 다 볼 수 있다. 지하에 위치한 만큼 빛이 들지 않아 촛불과 등으로 방 전체를 밝혀 놓고 있어 커다란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 오는 햇살 아래에 있는 제대만큼이나 주목을 받을만큼 환한 공간이 된다. 그 앞은 세로 철문으로 닫혀 있어 경사로를 내려 가더라도 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세로 철문 앞에 서면 그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을만큼 가까히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대리석 기둥 위에 받들어여 있는 석관을 볼 수 있다. 성녀 에우랄리아가 쉬고 있는 장소이다.
작은 제대와 의자가 놓여 있는 걸로 봐서는 주기적으로 그 안에서 미사가 행해지는 것 같은데 언제 미사가 열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13세의 여린 소녀였듯이 석관의 크기는 상당히 작았고 과거 시대 사람들의 평균 키가 지금보다는 더 작았던 걸 고려해 보더라도 정말 석관의 크기는 어린 아이의 것이라고 할만했다. 우리는 와이프가 미리 찾아 본 내용 때문에 이 곳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왜 이렇게 성대하게 모셔져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세로 철문 옆에는 "성녀 에우랄리아의 무덤"이라는 손바닥만한 작은 안내판만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아래로 내려온 많은 사람들은 철문 사이로 안을 들여다 보고는 바로 다시 올라간다. 그 작은 안내판은 구석에 위치해 사람들의 시선도 끌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성녀 에우랄리아의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면 그냥 화려하게 꾸며진 누군가의 작은 석관이 있네라는 감상만 남지 않을까. 사실 나도 성녀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면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였겠지만.
박해를 받던 시절 죽음을 맞이한 13살의 어린 소녀라 그녀가 순교한 다음에 그녀의 유해가 어떻게 수습되고 관리 되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를 기억하는 많은 신자들이 다시 그녀를 찾아 대성당에 모시기로 했고 이교도의 침입이 있을 때에도 그녀의 유해를 옮겨 다니며 빼앗기거나 파손되는 것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어떤 이들는 저 석관 안의 유해가 실재 성녀 에우랄리아의 유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단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법열"로 유명한 성 비토리아 성당도 근처 박해자들의 지하 무덤에서 발견된 유해 중에 성녀 비토리아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되고 밀납처리를 한 후 이 성당에 모시고 성당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비슷한 이유로 단지 성녀 에우랄리아로 추정되는 유해를 모시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숲을 보라고 했더니 나무를 보고 있는 건 아닐지. 성녀 에우랄리아가 알몸으로 고문을 받았다거나 날카로운 물건이 든 통에 넣어져 비탈길에서 굴려졌다거나 혹은 저 석관 안에 있는 유해가 정말 그녀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보아야 할 숲은 그 때 13살 소녀가 정말 신앙심이 깊었고 그 때문에 순교를 했다는,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신앙의 힘을 믿게 되었다는 부분이 아닐까. 그런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우디의 Sagrada Familiar도 만들어질 수 있었으니까. 한편으로는 저 석관 안의 유해가 정말 성녀 에우랄리아가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보았다. 화려하게 장식되어 누군가의 시선을 받으며 쉬는 것보다 그냥 어디 이름 없는 곳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쉬고 있는 모습이 더 성녀다울지도 모르겠으니까 말이다.
Barcelona Cathedral Rooftop
대성당 안을 거닐면서 서로 다른 모양으로 장식된 chapel들을 지나 한바퀴 돌다 보면 제대 좌측에 위치한 한 chapel 앞에서부터 사람들이 기다란 줄을 만들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대기줄이 대성당 옥상, rooftop으로 올라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줄이다. 사람들이 늘어선 줄이 금방 금방 줄지 않아 rooftop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상당이 좁아 한번에 올라가지 못하는 줄로만 생각했다. 어짜피 입장권에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라 우리도 그 대기줄에 합류에 순서를 기다렸다. 내심 저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얼마나 많은 계단을 밟아야 하나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우리 순서가 되어 chapel 안쪽으로 들어가 거기에 있는 작은 문을 통해 코너를 돌아서니 그 안쪽에 자그마한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로마/피렌체 호텔에서 보던 우리 다섯 가족 타고 나면 꽉 차던 엘리베이터만큼은 아니었지만 꾹꾹 눌러 타도 10명 정도 겨우 탈 수 있는, 흔히 보던 사이즈보다는 작은 엘리베이터가 부지런히 사람들을 올려 보내고 내려 보내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대기줄이 금방 금방 줄지 않았던 것이다.
대성당 지붕, rooftop은 꽤나 넓직하고 주변의 다른 건물보다 높이가 꽤나 높아 바르셀로나 전경과 뒷편으로 이어진 Gothic quarter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다. 게다가 Monjuic 산을 멀리서 바라 볼 수 있고 바닷가에서 Monjuic 산 정상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는 케이블카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위에서 바라보는 전경도 전경이지만 Gothic 스타일의 첨탑과 거기에 달린 장식들, 그리고 처마 군데 군데 위치한 서로 다른 모습의 gargoyle을 가까이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Gargoyle이라는 건 빗물들을 모아 아래로 내려 보내는 홈통에 위치한 장식, 혹은 성당 건물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을 가르키는 단어이다. 종종 조각상 가운데로 물길을 내서 gargoyle의 입모양에서 물이 떨어지게 만든 것들도 있다. 성당 건물이라면 모름지기 천사, 비둘기 같은 장식들로 채웠을 것 같지만 어느 성당에 가더라도 특이하게 gargoyle들은 괴물/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악령을 막거나 혹은 죄를 지으면 이렇게 된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틀에 박힌 천사의 모습이 아닌 괴물/악마의 모습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조금 더 창작의 자유가 많은지 의외로 유명한 gargoyle들도 많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gargoyle을 검색해 보면 정말 특이한 gargoyle들을 만날 수 있다. 여러 gargoyle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면 Washington DC에 위치한 Washington National Cathedral의 gargoyle일 것이다. 궁금하면 이 링크를 참고 하시길.
수도원 (Cloister)
작은 엘레베이터의 크기 때문에 다시 내려 오는 줄도 꽤나 길었다. 다시 성당 내부로 내려 오고 나서 다음으로 향하는 곳은 대성당 옆에 붙어 있는 수도원, Cloister 부분이다. 이 곳은 들어 오는 입구가 반대편 대성당 바깥쪽 골목과 면한 곳에 하나 더 있는데 그 곳을 통하면 입장권 없이 무료로 들어 올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중세 시대 성당을 장식하던 물건들과 주교님들이 사용하시던 의복, 미사 제의 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Cloister 한켠의 작은 박물관을 방문할 수 없으며 대성당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다.
수도원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Cloister 공간은 정사각형 모양으로 가운데 커다란 정원 부분을 중심으로 그 정원을 둘러싼 사방에 여러 chapel들과 앞서 말한 작은 박물관, 그리고 기념품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방문한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정원 한켠은 예수님의 구유 장식과 동방 박사의 아기 예수님 방문등을 작은 석고 인형들로 장식해 놓은 부분이 있었고 다른 한켠에는 인공 연못과 함께 거위들이 거닐고 있다.
뜬금없이 왠 거위... 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성녀 에우랄리아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성녀 에우랄리아가 13세의 나이로 순교했을 때 흰거위 혹은 비둘기가 그녀의 죽은 몸에서 나와 날아 갔다고 한다. 그 후 그녀를 기리는 방법으로 Cloister 안에서 13 마리의 거위를 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거위는 의외로 시끄럽고 사나운 동물이다. 실제로 거위를 키우고 있는 시골 농가에서는 낯선 이가 집에 오거나 하면 거위가 거칠게 방문자를 공격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방범견과 더불어 거위를 키우기도 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13마리의 거위는 성녀 에우랄리아를 기억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Cloister를 지키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이 13 마리의 거위들은 대성당 수도자들이 세심하게 관리하며 항상 13 마리를 유지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한마리가 병들거나 죽으면 새 멤버가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 Cloister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 여기 왜 거위가 살고 있는지 알고 오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도 그랬지만 거위들의 창살에 바짝 붙어 몇마리인지 세고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 배경 스토리를 아는 사람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구석에 숨어서 잘 보이지 않은 거위까지 위치를 바꾸어 가며 꼼꼼이 세어 보니 딱 13 마리가 맞긴 했다. 13이라는 숫자가 비교적 불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가톨릭/기독교 분위기에서 13 마리의 거위는 조금 특이하긴 했다.
다시 방문한 성녀 에우랄리아의 길
Cloister의 회랑을 따라 한바퀴를 돌고 숨어 있는 거위와 숫자놀이 숨바꼭질을 끝내고 나서 우리는 대성당 반대편에 위치한 출구를 이용해 바깥으로 나왔다. 이 출구에서 바로 보이는 길을 따라 곧바로 내려가면 어제 방문한 성녀 에우랄리아의 길 (Baixada de Santa Eulalia)로 갈 수 있다. 저녁을 먹기위해서는 일단 카탈루냐 광장 방면으로 나가야 했으므로 다시 그 길로 가 보기로 했다. 그 길 앞에 도착하니 네다섯분 정도의 수녀님들이 그 앞에 모여 계셨고 서로 모여 기도하시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어제 왔을 때는 그냥 그 골목과 눈높이에 있던 성녀에게 바치는 헌사가 쓰인 벽면 조각만 보았는데 그 앞의 수녀님들이 서로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고개를 들어 좀 더 높은 곳을 바라 보고 계셨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그제서야 2층 높이에 성녀 에우랄리아의 성상이 모셔져 있는 작은 기념함 같은 것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 왔을 때는 왜 이걸 보지 못했을까? 어쩌면 기울어진 비탈길, 그리고 거기서 굴려졌다는 통에만 신경이 쓰여 시선을 낮추기만 했을 뿐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닌 거기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본다.
저녁 식사
매 끼니를 챙기는 건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만큼이나 바깥에서 사 먹을 때도 골치 아픈 일이다. 더군다나 아주 낮선 지역에서는 더더욱. 익숙한 음식을 고르는 건 비교적 쉽다만 어느 식당에서 어떤 음식이 나오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섣불리 선택했다가는 행복한 식사가 아니라 고역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제일 좋은 방법은 익숙한 음식을 고르는 것이다. 머나먼 유럽 땅까지 와서 현지식을 경험하지 못하고 익숙한 음식을 선택하는게 아쉬울수도 있지만서도.
그래서 고른 곳이 일식집. 일단 카탈루냐 광장을 Google Maps 중앙에 띄워 놓고 Japanese Restaurant를 검색한 후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며 검색을 했다. 다행이 카탈루냐 광장에서 한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서 리뷰도 괜찮은 일식집을 찾아 내었다. 이름은 Kasa Japo. 6시 경에 도착했는데 아직 본격적인 저녁 시간 전이라 그런지 한산 했고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아니 스페인에서는 저녁 식사 시간이 늦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익숙한 음식이라 그런지 메뉴도 괜찮았고 나름 깔끔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호텔로 돌아 오는 길은 이미 복잡해져 버린 카탈루냐 광장을 가로질러 오게 되었는데 길가에 군밤 파는 노점이 보였다. 작년 로마에 있을 때 막내가 이 길거리 군밤을 좋아하던 기억이 나서 한봉지를 사서 나누어 먹었다. 큰 아이가 대성당 안쪽 길에 유명한 추러스 파는 가게가 있다고 해서 가는 길에 그 곳도 들렸는데 초콜렛에 찍어 먹는 추러스가 너무 달아 난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생각보다는 별로였는지 아이들도 그다지 열심히 먹지는 않았다.
이렇게 바쁘게 보낸 하루를 다시 마무리 하며 공식적인 여행 일정은 마무리 한 셈이 되었다. 내일은 자유시간으로 Ramblas를 돌아다니며 마무리 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마침표를 잘 찍는 시간이 되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