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여행기 - 다섯째날 카탈루냐 예술 박물관
Monjuic 산으로 가는 길
여행 와서 맞는 첫 일요일.
집에 있었더라면 그냥 늦잠 자고 밀린 집안 일을 시작할 때이지만 여행을 왔다면 한시각 한시각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얼마를 들여서, 아니 어떻게 아껴온 시간을 투자해서 온 길인데. 그렇다고 내가 마냥 서두른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현지 시간이 일요일이면 모든 것이 느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맨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Monjuic 산은 월요일날 방문 예정이었다. Monjuic 산에서 가 보아야 할 곳은 두 곳이었는데 어짜피 한번 간다면 간 김에 두 곳을 모두 방문하는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더랬다. 그 두 곳은 Monjuic 성 (Castell de Monjuic)과 카탈루냐 예술 박물관 (Museu Nacional d'Art de Catalunya). 먼저 Monjuic 성 홈페이지에 가서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입장권을 예매했다. 그리고 오후에 박물관을 가려고 박물관 홈페이지에 갔는데, 아뿔싸... 박물관은 월요일 휴관이었다. 박물관 홈페이지에 먼저 방문했더라면 일요일로 스케줄을 모두 맞추었을텐데 Monjuic 성 입장권을 벌써 예매한지라 조금은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취소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이메일로 연락하거나 전화 하라고 되어 있어 번거롭고 제대로 될지 확신이 안 들어 그냥 Monjuic 성은 월요일, 박물관은 일요일에 방문하는 걸로 스케줄을 조정했다.
호텔에서 박물관까지의 경로를 검색해 보니 의외로 버스 한번만 타면 되었다. 예매 시간은 오전 11시라 조금은 아침에 여유를 부리고 9시 30분쯤 호텔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은 카탈루냐 광장에서 한블럭 떨어진 Urquinaona 광장. 복잡한 교차로 사이에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공원같은 광장으로 그 아래로 메트로 L1이 지나가 매번 이용하는 장소였다. 55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곧 도착한 버스는 우리를 태우고서도 한참을 정차해 있다가 출발했다. 이 곳이 버스 노선 출발지였나 보다.
지난 번 Parc Guell에 가면서 버스는 한번 타 보았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버스는 상당히 깨끗하고 조용했다. 바르셀로나의 대중 교통은 꽤나 즐길만한 교통 수단처럼 느껴졌다. 앞서 구매했던 T-casual card는 메트로와 버스 모두에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에서 돌아 다닌다면 참 유용한 티켓이라고 생각한다. 적극 추천.
시내를 이리저리 돌던 버스는 금새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Monjuic 언덕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한번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한 버스는 박물관이 위치한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오르막을 올라간다. 여행 오기 전에 황영조 선수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황영조 선수가 마지막 몇킬로미터, Monjuic 언덕을 오르며 정말 허벅지 근육이 터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고 했는데 그 느낌이 어떨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끝도 없이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Museu Nacional d'Art de Catalunya
박물관에 가기 위한 버스 정류장은 박물관 뒷편에 위치한 길 위에 있다. 막상 정류장에서 내리고 나면 나무에 가려져 박물관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표지판을 따라 조금만 언덕을 돌아 가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바르셀로나의 전경과 더불어 박물관의 정문 방향으로 난 길로 나갈 수 있다.
박물관의 정식 이름은 Museu Nacional d'Art de Catalunya (National Art Museum of Catalonia). 카탈루냐 지방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박물관으로 카탈루냐 지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종종 줄여서 MNAC라고 표현되니 지도 상에서나 표지판에서 이 약자를 본다면 이 박물관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1929년에 세워진 이탈리아 스타일의 Palau Nacional (National Palace) 에 기반을 두고 있고 1934년에 박물관으로 변경되었고 1990년에 카탈루냐 지방 정부에 의해 국립 미술관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 때 새로 리노베이션도 이루어졌고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라고 한다.
우리는 11시 입장권을 미리 예매해 두었기 때문에 바로 정문으로 들어 갔다. Ticket booth에 가서 예약한 입장권을 보여 주었더니 새로 입장권을 프린트해 주며 색깔 있는 동그란 스티커를 주었다. 전시 공간이 여러 군데 있는데 이 스티커 색에 따라 들어 갈 수 있는 전시장이 달랐다. 보통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은 cloak room과 locker가 있게 마련인데 여기도 한켠에 마련되어 있었다. 어떤 곳은 백팩 같은 가방은 반드시 locker에 보관해야 하지만 여기는 의무 사항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부에 돌아 다니는 동안 별로 가방 안 물건들, 물병이랑 베터리 팩, 여분의 겉옷 등등은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locker에 넣어 두기로 했다. Locker를 잠그기 위해서는 1 유로 동전을 넣어야 했는데 주변에 동전 바꾸어주는 기계도 없었고 해서 cloak room에 계시는 분에게 어디서 1 유로 동전을 바꿀 수 있는지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분이 주머니에서 하얀색 동전 모양 플라스틱을 꺼내 주시더니 이거 사용하고 나중에 되돌려만 달라고 하신다. 1 유로 동전이 사용료가 아니라 종종 마켓 같은 곳에 가면 동전을 넣어야 lock이 풀리는 카트처럼 그런 디파짓 용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쉽게 locker를 사용할 수 있었다. 워낙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보니 일반 백팩 정도가 들어가는 사이즈 뿐만이 아니라 여행용 캐리어가 들어가는 사이즈의 locker도 있었다.
1층 전시실은 크게 좌우 두 전시실로 나뉘어져 있었다. 우선 정문에서 들어갔을 때 좌측은 중세 Romanesque 미술품들을, 우측은 중세 Gothic 미술품들과 그 뒤로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미술품들의 전시로 이어진다.
우선 좌측 Romanesque 전시실로 향했는데 이 전시실은 일반 전시실과는 많이 달랐다. 전시 내용이 각 성당에 있던 벽화들을 그대로 떼어와 전시해 놓은 것이라 전시실이 성당의 실내를 나타낸 모양으로 군데 군데 전시물이 있었다. 커다란 돔으로 이루어진 로마/피렌체의 성당 같은 것이 아닌 지역 작은 성당의 모습이라 그런지 아담하지만 그래도 2층 정도의 높이로 커다란 반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 각 성당에서 떼어온 프레스코화를 그대로 그 전시물에 옮겨 놓은 형태로 전시가 되어 있었다.
카탈루냐 지역의 Alta Ribagorca라고 불리우는 지역에 Vall de Boi라고 불리우는 계곡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초기 Romanesque 형식의 교회 아홉 곳이 있고 그 중에 Taull의 성 클레멘트의 교회(Church of Sant Cliement de Taull)가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이 아홉 교회는 UNESCO의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되어 있단다. 당시 카탈루냐 지방을 지배하던 무어인들에 대한 무장 봉기와 그 승리로 인해 부가 쌓이게 되고 이에 12세기 이 곳 교회들에 프레스코화의 전성기가 열리게 된다.
전시물들이 성당 안 돔이나 벽에 있던 성화/벽화들이라 처음엔 모사품인가 싶었다. 그런데 몇몇 전시물을 지나고 나니 전시실 구석에 의자와 함께 비디오 영상물을 틀어 주고 있었는데 이 성화/벽화들을 어떻게 떼어 오고 보존 시키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렇게 벽에 그려진 벽화들을 그대로 옮겨 올 수 있을거라 생각을 못했는데 마치 탁본을 뜨는 것처럼 그 위에 여러 도료/화학 처리를 한 다음에 그 벽체를 얇게 떠 오는 방식으로 가져 온다고 한다. 회벽에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 화라서 그렇게 떼어 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참 신기한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내 눈앞에 펼쳐진 여러 성화들이 전부 진품이라는 말이 된다. 왜 일부 전시물들은 그 앞에 유리 혹은 플라스틱 막으로 다가갈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작년에 로마/피렌체에서 수많은 성당들과 박물관에서 여러 벽화/성화들을 감상하고 온지라 여기에 전시된 벽화들이 새롭지는 않았지만 뭔가 살짝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표현이 적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투박한 느낌? 최고의 화가들은 당연하게도 대도시, 로마나 기타 부유한 이탈리아의 도시로 갔을테고 남아 있는, 혹은 초청된 화가들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일지도 모르겠다. 화려하거나 정밀한 묘사가 아니라 덜 정교하고 투박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게 급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카탈루냐 지방의 시골 성당에 이런 그림이 있는게 더 어울린다는 느낌. 이런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같은 그림이 있다면 오히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가 보고 있는 벽화들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딱 있어야 할 곳에 딱 맞는, 그래서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그 표현 방법이 살짝 달라 보였다. 어떻게 전문적으로 설명하거나 표현할 방법이 없는데 벽화 속에 그려진 사람들의 표정이나 모습이 카탈루냐 지방 사람의 모습을 본뜬 것 같은 느낌이랄까. 보통 우리가 중국 사람/한국 사람/일본 사람을 보면 다 같은 동양인이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다름 정도의 차이랄까. 분명 이런 구도와 내용의 벽화를 피렌체의 성당과 박물관에서 본 것 같지만 그것과는 어딘가 조금 달랐다.
반대편 Gothic 시대의 미술품들도 로마/피렌체에서 보던 것과는 살짝 달랐다.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참 카탈루냐 색깔이 드러나 있다고나 할까.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만서도...
두 전시관을 돌고 나면 바로 뒷쪽에 커다란 전시공간, 아니 언뜻 보면 경기장 같은 큰 공간이 나타난다. 평소에도 종종 여기서 특별전 같은 것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눈이 여러개 달린 개 혹은 늑대의 그림이 아주 커다란 걸개로 드리워져 있었다. 이걸 어디서 보긴 했던 것 같은데 어딘지 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자료를 찾다 보니 Church of St. Climent de Taull의 프레스코 화의 천장 부분에 있던 그림이었다. 위쪽에 포스팅한 Church of St. Climent de Taull 프레스코 사진에 보면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이 동물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기념품점에 가니 이 그림이 있는 작은 소품들이 꽤 있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특이해서 아이콘처럼 대표하고 있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박물관에서의 점심 식사와 오후 관람
일단 1층 전시실들을 둘러 보고 나니 12시 30분쯤 되었고 점심 식사 할 때가 되었다. 보통 이런 박물관에는 자그마한 카페테리아 같은 것이 위치하고 있어 그 안에서 해결하게 되는데 커다란 전시 공간 한켠에 비교적 깨끗한 카페테리아가 있었다. 주로 미리 만들어진 샌드위치 종류를 팔고 있어 별로 다른 선택지가 없었지만 그래도 피자/햄버거/감자튀김이 주 메뉴인 미국의 박물관 카페테리아 보다는 훨씬 좋았다.
조금은 여유롭게 식사를 마치고 커피도 마시면서 여유를 부린 다음에 2층 전시 구역으로 올라 갔다. 좌우 현대 미술에 대한 전시실이 있었는데 그 전에 작은 공간에 화폐에 관한 전시실이 있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용되던 동전부터 중세 시대에 화폐로 사용되던 금화, 베네치아 공화국의 두카트 (Ducat) 금화 등이 시대별로 전시가 되어 있었고 고대부터 현대로 쭉 이어져 근대 지폐, 스페인 초기의 화폐, 유로화로 바뀌기 전 스페인의 화폐 페세타 (peseta), 그리고 지금의 유로화까지 볼 수가 있었다. 마지막 두 칸이 재미 있었는데 마지막 두번째칸에는 온갖 크레딧 카드가, 마지막 칸에는 비트코인을 형상화한 모습이 있었다. 그래 맞는 말이다.
현대 미술에 관한 전시실이라고 해서 선입관이 먼저 들었다. 난해하거나 이상한 작품들만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의외로 거기에 전시된 것들은 스페인 내전 당시의 일기, 여러 기사 자료 등 역사적인 내용들이 꽤나 많았고 한편엔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구/문 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전체적인 전시의 내용과 전시실의 구성이 관람 동선에 맞추어 시간적인 순서로 되어 있었다. 처음 시작한 곳은 스페인 내전으로부터 시작해 그 이후에 카탈루냐 지방에서 이루어진 작품들로, 그리고 가우디의 전성 시절에 그가 디자인한 가구들까지. 와이프는 비교적 전시 내용이나 구성이 잘 되었다고 칭찬했는데 나는 왠지 뭔가 모르게 어수선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내가 미처 놓치고 있는 뭔가가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Eulaia of Barcelona (성녀 에우랄리아)
전시실을 자유롭게 구경하며 다니다 보면 다섯 식구가 하나 둘씩 떨어져 자신의 속도에 맞게 흩어지게 된다. 나는 비교적 천천히 설명들을 하나씩 읽으며 가는 스타일이라 조금 뒤쳐지는 편이고 아이들은 자기네 흥미있는 것들만 쫓아 다니는 건지 아니면 나보다 영어 설명을 훨씬 빠르게 읽고 이해하는 건지 저만큼 앞서 나가는 편이다. 그렇게 조용히 하나씩 하나씩 찾아 보며 가고 있는데 나보다는 조금 더 앞서 나갔던 와이프가 되돌아 오더니 흥미로운 것을 찾았다며 나와 아이들을 불러 모아 한 그림 앞으로 데려간다.
와이프가 그림들을 둘러 보고 있다가 조금은 특이한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다. 보통 예수님에 관한 그림이나 순교자들의 그림이면 꺼꾸로 십자가형을 당한 베드로 사도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십자가 모양의 순교장면들을 보게 되는데 전시실 한켠에 있는 여러 그림들이 X 모양의 십자가에 매달린 어떤 이의 그림들로 가득 차 있는 걸 본 것이다. 흔하지 않은 십자가 모양에 비슷한 주제를 계속 담고 있는 것 같아 열심히 번역기까지 돌려 가며 검색하면서 이 그림들이 성녀 에우랄리아(Eulaia of Barcelona)를 기리는 그림들이라는 것을 알아 냈다.
성녀 에우랄리아는 지금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가 고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3세기말에 Sarria라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곳은 지금 바르셀로나에 속한 행정 구역이라고 하니 바르셀로나 외곽 어디쯤 되는가 보다. 당시 로마 황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그는 혼란의 3세기 로마 제국은 수습하고 사두체제를 제안해 로마 제국을 동방과 서방으로 나누어 각각 정제와 부제를 두어 네명의 황제가 나누어 다스리도록 만들었다. 일단 로마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기는 했지만 누가 정제/부제냐에 따라 결국 그들만의 황제 경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암튼 혼란의 시대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강력한 카톨릭 박해를 시작한다. 당시 카톨릭 신자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따르며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았고 그 많던 로마의 신들을 무시했기 때문에 황제 입장에서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도, 의무도 따르려 하지 않는 체재 내의 무정부주의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당시에 그들은 지금의 세상이 망해야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당신의 왕국, 천년 왕국이 곧 올거라 믿었으니 말이다.
신앙심이 깊었던 에우랄리아는 당시 불과 13살이라는 나이에 당당하게 바르셀로나 총독 Dacian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그 앞에서 박해의 부당함과 불평등을 따졌다고 한다. 총독은 예수님을 부정하고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네 나이만큼 형벌을 내린다고 겁을 주었지만 에우랄리아는 신앙을 택한다.
그녀에게 내려진 형벌은 참혹 그 자체였다. 채찍질은 기본, 불고문에 의해 가슴은 타서 없어져 버렸고 끓는 기름 붓기까지. 그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커다란 통에 깨진 유리와 못, 날카로운 물건으로 채우고 그녀를 알몸으로 넣고 내리막길에 13번이나 굴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그녀를 꺼내 보니 상처 하나 없이 나왔다는 기적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매달려 위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공개적으로 고문을 받다가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X자 모양의 십자가가 그녀의 순교의 상징이 되었다. X자 십자가 위해서 고문으로 죽었기 때문에 나중에 그녀는 십자가 형으로 못 박혀 순교했다는 믿음이 생기기도 했단다.
너무나 잔인한 죽음과 그녀의 신앙심의 존경으로 그녀는 지금 바르셀로나 대성당, 호텔 바로 옆에 있는그 대성당에 모셔져 있고 바르셀로나의 수호 성인으로 기리고 있다. 그래서 이 한켠 전시관이 그녀에 대한 성화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보면 사람은 참 잔인한 본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에 대한 성화를 보더라도 영광스러운 장면에 대한 묘사가 아닌 십자가형과 고난,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한 묘사가 훨씬 많다. 예수님의 경우 당신의 희생으로 인류의 원죄를 구원하셨다는 믿음이 있으니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이 성녀 아우랄리아의 경우 알려진게 그 잔혹한 고문들이 전부라 그런지 그녀를 기린다는 명목으로 잔인한 모습만을 부각시켜 그려 놓은 듯한 느낌이다. 마치 내가 더 자극적이야.. 라는 듯한 모습으로. 그러다 보니 그 고통 속에서도 차분히 신앙을 지킨 그 의젓함이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잔인한 고문이 있었는지만 기억되는 것 같아 살짝 씁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와이프의 이 발견은 바르셀로나를 이해하는데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오후에 방문하게 될 Gothic 지구에서도, 그리고 며칠 후 방문하게 될 바르셀로나 대성당에서도, 그리고 주변 곳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X자 십자가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알면 그 장소들을 눈에만 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담아 올 수 있다.
Gothic Quarter(고딕 지구)로
하절기에는 평일 저녁 8시, 동절기에는 평일 6시가 박물관 문을 닫는 시간이지만 일요일만은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 2층 관람 구역을 다 돌아보고 나니 직원들이 서서히 사람들에게 나가라고 안내를 시작했다. 뒤쪽으로 가면 한층 더 올라가 외부 테라스 같은 곳을 갈 수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미처 찾아 보고 가 볼 기회가 없었다. 원래 예정대로 월요일에 왔더라면, 그리고 그 월요일이 휴관일이 아니었다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둘러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좀 남았다.
백팩 가방을 찾기 위해 1층 locker에서 키를 넣어 돌리니 안쪽에 툭 하고 아까 넣었던 하얀색 둥근 플라스틱 조각이 떨어진다. 아마 1 유로 동전을 넣어도 같이 되돌려 받았으리라. 옆에 위치한 cloak room에 가서 안내 하시는 분에게 잘 썼다고 돌려 드리니 그 분도 옅은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신다. 이런 자그마한 친절이 이 박물관의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참으로 기분 좋은 마무리였다.
폐관 시간이 되어 한번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박물관 앞은 북적북적했다. Monjuic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으니 눈 앞으로는 널리 바르셀로나 전체가 펼쳐져 있다. 박물관 바로 앞부터는 층층히 계단과 그 중간의 작은 공간들이 이어지는데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면 저멀리 넓직한 대로로 이어지고 그 끝에 커다란 탑과 함께 에스파냐 광장(Placa d'Espanya)이 보인다. 층층이 이루어진 계단과 그 사이 공간은 물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중간 중간 분수로 이루어진 공간이지만 지난 번 Ciutadella Park 안의 Cascada monumental 분수처럼 가뭄 때문에 물은 전혀 흐르지 않았고 분수도 전부 동작하고 있지 않았다. 물과 분수가 어울어져 있었다면 꽤나 근사했을텐데 아쉬움 하나를 더해 본다.
일정이 꼬여 무리하게 일요일 오전에 박물관을 끼워 넣으라 오후 시간이 애매하게 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이 남은 오후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찾아 넣은 것이 Ciutadella Park 였지만 이 곳도 둘째날 스케줄에 얼떨결에 소화해 버려서 조금 난감하긴 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Gothic Quarter 탐방, 그리고 그 안에 위치한 Barcelona History Museum (MUHBA; Museu d'Historia de Barcelona) 방문이었다. 알아 보니 Barcelona History Museum은 일요일 오후 3시 이후는 무료 입장이란다. 아하!!
에스파냐 광장까지 그대로 걸어가 거기서 메트로를 타면 Gothic Quarter 한복판인 Liceu 역까지 갈 수 있다. 사실 Gothic Quarter 탐방은 갑자기 찾아낸 방문지라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뜻하지 않은 것들을 참 많이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