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마을 - 옛 수필

그렇게 잠시만...

피터K 2021. 6. 18. 12:33

*!*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난 어려서부터 참 그림을 못 그리는 편이었다. 

특히나 그림 물감으로 그리는 수채화의 경우에는 말이다.

머리 속에서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하기도 하고 또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하얀 스케치북 여백에 담고 싶었지만 막상 밑그림 뒤에

색을 덮고 나면 그림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채화라는 그림 그리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난 물감을 풀어 색을 덮고 나서 그 색이 맘에 안 들거나 혹은

내가 원하던 대로 보이지 않으면 다시 다른 색을 그 위에 덧칠하곤

했다. 그러면 그림은 늘 번지게 마련이었고 오히려 더 엉망이 

되어 버리곤 했다. 한두번 그런 경험을 가지고 난 후라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나는 자꾸만 그 위에

덧칠을 하곤 했다. 번지고 또 번지고...

결국 머리 속에 가지고 있었던 풍경의 모습은 아주 형편없는 모습으로

스케치북에 남아 버렸다. 


가끔은 인생이란 것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된 일에 자꾸만 나아지게 해 보려고 덧칠을 하고 있고

결국엔 엉망으로 번져 버린 것을 보고 난 또 다시 속상해 하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될 때에는...

난 때론 내 자신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잠시, 한걸음 벗어나 마음을 가다듬어 보고 싶다.

물감이 마를 때까지 그리고 예전에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가

그리지 못한 그림에 다시 붓을 대어 보아야겠다. 

그렇게 잠시만... 평안으로 돌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