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것... 그리고...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프롤로그 : 매주 금요일 2시에는 교수님과 미팅을 한다.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또한 어떠한 문제가 생겼는지
이야기 하곤 한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교수님과 미팅하는 것은
별로 즐거운 일은 아니다. 같이 토론한다는 느낌보다는 디펜스 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팅을 끝내고 나면 기운이 쪽 빠지고
만다.
얼마 전에 교수님에게 사인 받을 것이 있어서 서류 뭉치를 들고
교수님 방으로 찾아 간 적이 있었다. 하시던 일을 마무리 하시는 동안
기다리던 나는 책상 위에서 못 보던 PDA를 하나 보았다.
이름이 PalmPilot이던가? 어느 회사건지는 모르겠지만 펜 방식의
PDA였다. 지난 번에도 하나 사시더니 며칠 전 새걸로 하나 또 사신
모양이었다. 신기해서 좀 들여다 보고 있었더니 교수님이 친절하게
이것 저것 설명해 주신다. ^^;
"피터씨, 이거 봐. 이건 이게 되고, 또 이건 이렇게 나오고, 어쩌고
저쩌고...."
"아, 그렇군요. 재미 있네요. 우와, 신기하네요... ^^; "
솔직히 말하면 별로 신기 하진 않았지만 (워낙 하는 일이 이쪽 바탕이라서
그런지 뭐가 새로 나와도 별로 신기하진 않다. 다만 공학도라서
그런지 저게 어떻게 돌아 가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교수님의 쿵짝을 맞추어 드리느라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같이 동작도 시켜 보고 그랬다. 난 간단히 서류에 사인만 받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려 20분이나 지나서야
나올 수 있었다. 교수님 방을 나오면서 문뜩 흘러 가는 생각 하나는...
한 일주일동안 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왜냐고? 우리 교수님은 뭔가 새로 나온거 좋아 하셔서 한번 붙잡고
계시면 한 일주일동안 이리 저리 동작시켜 보고 가지고 노시느라고(?)
학생들을 괴롭히시지 않기 때문이다. :)
교수님에겐 그런 것들이 장난감인가 보다. 그래서 우리도 가끔씩
새로운 장난감(?)이 나오면 한번 써 보시라고 권해 드리기도 한다.
지난 번에 노트북을 새로 샀을 때 한 2주일 동안 간 것이 제일 길게
간 것이지 싶다. ^^;
PDA의 기능 중에 참 여러가지가 있지만 아주 기본적인 기능으로
전화번호부가 있다. 한번 입력 시켜 놓으면 참으로 편리하게 꺼내
볼 수도 있고, 다이어리와는 달리 자기가 알아서 소팅해 놓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잊어도 될만한 것들은 깨끗하게, 아주 깨끗하게
지워버릴 수 있다.
사람의 기억도 그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때론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쁜 기억은 모두 지워 버리고 기분 좋았던 일들만, 그리고 행복했던
기억들만 모두 남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람은 어떻게 된 것인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함께
기억한다.
*!* 더우기 황당한 것은 꼭 기억해야 하는 것도 잊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 *!*
마음이 아프게 되는 것도 그리고 슬프게 되는 것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남기고 싶은 것들만 남기는 것은
어쩌면 무한한 욕심이련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기억만 만들기를 노력하는 것은 별로 나쁜 일이 아니겠지?
그리고 나쁜 기억들도 많지만 좋았던 기억들을 더 떠 올리고
좋은 사람으로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도 나쁜 욕심만은 아니길 빌어
본다.